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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하나하나가 결국 한 줄기로 모이는 재미
처음 이 드라마를 틀었을 때만 해도 큰 기대는 없었다. 재벌 회장이 남몰래 탐정 일을 한다는 설정 자체가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았고, 첫 장면에서 은선우가 노인으로 변장해 경매장에 나타나는 모습도 솔직히 좀 과하다 싶었다. 그런데 몇 개의 사건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 작품이 사람을 붙잡아두는 힘은 구조에 있다고 생각한다. 매번 새로운 사건이 시작되고 나름의 결말을 맺는데, 그게 따로 노는 게 아니라 결국 '여왕의 눈물' 목걸이와 선우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큰 줄기로 조금씩 모여든다. 오아라 사건, 수아 납치, 강태준 회사의 비리까지 하나씩 보면 각자 완결된 이야기인데, 다 보고 나면 전부 퍼즐 조각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한 회를 보고 나서도 만족감이 있으면서 동시에 다음이 궁금해지는 구성이라 중간에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오아라 사건이다. 집 안이 피로 가득한 장면을 보고 당연히 죽었겠구나 싶었다. 선우가 용의자로 끌려가는 걸 보면서도 범인이 누구인지에만 신경이 쏠려 있었다. 그런데 오아라가 멀쩡히 살아 있었고, 자기 아이를 지키려고 직접 꾸민 일이었다는 게 밝혀졌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아렸다. 범인을 잡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누군가를 지키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던 거다. 그 순간부터 이 드라마를 보는 내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선우와 세라, 진모 세 사람이 주고받는 대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이야기 자체는 살인, 납치, 비리처럼 무거운 것들이 대부분인데, 세 사람이 투닥거리는 장면들이 사이사이 숨을 돌리게 해준다. 특히 세라가 선우의 비밀을 쥐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장면이나, 진모가 중간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은 보면서 몇 번이나 웃었다. 이런 장면이 없었다면 후반부의 무게를 버티기 꽤 버거웠을 것 같다.
세라의 눈이 품고 있던 이야기
돈세라라는 인물은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그저 편리한 장치처럼 보였다. 카지노에서 문제 손님을 귀신같이 찾아내고, 먼 곳의 차량 번호도 한눈에 읽어내니 사건 해결에 이보다 좋은 조력자가 없다. 솔직히 처음엔 이렇게 다 보이면 추리할 맛이 있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눈이 세라에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는 게 드러난다. 어린 시절 그 눈 때문에 보지 말아야 할 장면을 봤고, 그게 오랫동안 악몽으로 남아 있었다. 동화책 속 '푸른 도깨비'로만 기억하던 그 장면이 사실은 살인 현장이었다는 걸 깨닫는 대목에서는 소름이 돋았다. 남들보다 더 많이 본다는 게 결국 더 많은 걸 짊어진다는 의미였구나 싶었다. 이렇게 능력의 뒷면을 보여주니까 세라라는 사람이 훨씬 입체적으로 느껴졌다.
선우와 세라가 같은 사람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설정도 처음엔 좀 우연이 겹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꽤 공들여 깔아둔 이야기였다. 세라가 자란 보육원, 그곳에 찾아오던 '천사 아줌마', 그리고 그분이 세라의 눈을 특별하게 여겨주며 따뜻하게 대해줬다는 기억까지 차근차근 보여준 뒤에야 그 사람이 선우의 어머니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순서가 반대였다면 억지스러웠을 텐데, 앞에서 충분히 쌓아둔 덕분에 오히려 뭉클하게 다가왔다. 안가에서 세라가 사진을 보고 알아보는 장면은 이 드라마에서 손에 꼽을 만큼 좋아하는 장면이다.
두 사람의 관계도 그래서 설득력이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약점을 잡고 으르렁대던 사이였는데, 같은 상처를 공유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조금씩 기대게 된다. 선우가 무너질 때 세라가 곁을 지키고, 세라가 악몽에 시달릴 때 선우가 다독여주는 장면들이 억지로 붙인 로맨스처럼 느껴지지 않았던 건 아마 그 바탕 덕분일 거다.
몰아친 반전이 남긴 여운과 아쉬움
좋았던 점만 있었던 건 아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반전이 너무 한꺼번에 쏟아져서 따라가기가 좀 벅찼다. 완수의 죽음이 자살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 제하의 진짜 정체, 완수와 제하가 부자 관계였다는 사실, 거기에 세라가 20년 전 목격자였다는 이야기까지 거의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진다. 하나하나가 충분히 큰 이야기인데 연달아 터지다 보니 오히려 각각의 무게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놀라기는 하는데 곱씹을 시간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제하라는 인물이 특히 아쉬웠다. 어린 시절 완수에게서 쓸모없는 사람은 필요 없다는 말을 듣고 자랐고, 그 말 하나에 매달려 뭐든 할 수 있었다는 고백은 꽤 처연했다. 선우를 향한 질투, 자기는 늘 지옥이었다는 말에서 이 사람이 어떻게 무너져 왔는지가 언뜻 보이긴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을 조금만 더 천천히 보여줬다면 단순한 악역이 아니라 훨씬 복잡한 인물로 남았을 것 같다. 반전을 위해 이 사람의 속사정이 너무 빠르게 압축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마지막에 선우가 제하 앞에서 내린 선택은 오래 마음에 남는다.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 눈앞에 있고, 그 사람이 일부러 자극하며 자기를 살인자로 만들려 하는 상황에서 선우는 다른 길을 택한다. 진실을 끝까지 쫓는 것과 미움에 삼켜지지 않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그 장면이 보여준 것 같았다. 복수가 흔한 장르에서 이런 결말은 생각보다 묵직하게 다가왔다.
한 가지 더 짚자면, 선우가 모든 걸 미리 계산하고 있었다는 전개가 반복되는 점은 조금 아쉬웠다. 칼에 찔리고 실종된 것조차 계획이었다는 게 밝혀질 때는 분명 통쾌했다. 하지만 그 뒤로는 위기가 닥쳐도 이것도 다 생각해둔 거겠지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주인공이 정말로 흔들리고 실패하는 순간이 한 번쯤 있었다면 마지막 별장 장면의 긴장감이 훨씬 컸을 것 같다.
끝까지 풀리지 않은 궁금증도 있다. 완수가 별장에 숨겨뒀던 목걸이가 어떻게 오아라의 손에 들어갔는지, 오아라는 왜 끝까지 그 출처를 말하지 않았는지가 분명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이야기가 끝났다. 일부러 남겨둔 여백인지, 그냥 메우지 못한 부분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이 드라마의 출발점이 바로 그 목걸이였던 만큼 이 부분은 계속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다 보고 나서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보게 된다는 것 자체가 이 작품이 그만큼 마음을 붙잡았다는 뜻일 거다. 아쉬움이 생기는 것도 기대가 컸기 때문이고, 후반부가 정신없었다면 오히려 한 번 더 보면서 앞에 깔아둔 복선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탐정물의 긴장감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함께 담긴 드라마를 찾고 있다면, 미스터리 탐정은 충분히 시간을 들여볼 만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