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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안이라는 인물, 어디까지 공감할 수 있을까
이지안을 단순히 '불쌍한 캐릭터'로 소비하는 드라마였다면, 저는 반쯤 보다 껐을 겁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지안은 도청을 했고, 거짓말을 했고, 전과도 있습니다. 그 모든 사실이 드라마 후반부에 차례로 드러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과라는 설정은 시청자 입장에서 순간적으로 멈칫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박동훈이 "그 상황에서는 누구라도 죽였을 것"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저는 이게 값싼 동정이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이 대사는 캐릭터를 미화하는 게 아니라, 맥락을 이해하는 것과 행동을 용납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이지안의 어머니는 빚을 잔뜩 남기고 도망쳤고, 이지안은 상속포기 제도를 몰라 그 빚을 고스란히 떠안았습니다. 여기서 상속포기란, 피상속인의 채무를 승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법원에 신고하는 절차를 말합니다. 법적으로는 분명히 존재하는 보호 장치인데, 정보가 없으면 그 장치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지안의 고통이 단순한 불운이 아니라 구조적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정이, 캐릭터를 훨씬 입체적으로 만들었습니다.
드라마 리뷰를 쓰면서 이렇게 캐릭터 배경을 꼼꼼히 되짚어본 적은 오랜만이었습니다. 이지안이 "이 동네가 좋았다"고 말하는 순간, 박동훈이 그 말을 자신을 향한 말로 들었다는 고백이 겹치면서 감정선이 완성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박동훈의 사이다, 근데 그게 진짜 사이다였을까
시청자들이 박동훈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요. 저는 그가 대단히 능력 있는 사람이라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서 치이고, 도준영에게 통화 목록이 넘어가고, 감사실에서 책상을 뒤집어엎는 상황에도 놓이는, 사실 꽤 많이 흔들리는 사람입니다.
그 흔들리는 사람이, 자기보다 더 밑바닥에 있는 사람 앞에서는 그냥 지나치지 못합니다. 이지안의 할머니 문제를 알게 되자 장기요양등급 신청을 권유하고, 빚 문제를 파악하자 조용히 해결해줍니다.
제가 직접 드라마를 보면서 불편하게 느낀 장면이라고 뽑아본다면, 박동훈이 이지안의 도청 사실과 각종 잘못들을 알고도 계속 "괜찮다", "아무것도 아니다"를 반복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선의임은 알겠는데, 어떤 각도에서 보면 잘못을 무마해주는 어른의 시혜적 태도로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지점은 드라마가 일부러 비워놓은 공간인지, 아니면 무심코 넘어간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옛날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대사는 오래 남았습니다. 위로치고 너무 담백해서 오히려 진짜처럼 들리는 말이 있는데, 이 드라마에는 그런 대사가 꽤 많았습니다.
- 박동훈이 이지안을 채용한 이유: 이력서에 달리기 하나뿐이었지만, 스펙 좋은 지원자들보다 강해 보였다고 설명한다
- 조용한 실천: 빚 청산, 할머니 요양원 입소 지원, 장기요양등급 안내까지 모두 조용히 진행한다
- 비판적 시각: 잘못을 반복적으로 감싸는 태도가 시혜적으로 읽힐 여지도 존재한다
감정선이 탄탄했던 이유, 그리고 산만했던 서브플롯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감정선은 탄탄한데 사건 전개는 종종 따라가기 벅차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박동훈과 이지안의 감정 흐름이 워낙 섬세하게 쌓여가서, 중반부에 도청 사건과 상품권 횡령 의혹, 박동운 상무를 둘러싼 비리가 한꺼번에 얽힐 때 잠깐 집중력이 흩어졌습니다.
감정선이 탄탄할 수 있었던 건 결국 두 인물의 관계가 아주 느리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지안이 처음 박동훈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계기가 "회식에 같이 가자"는 말 한마디였다는 고백, 그리고 파견직이라는 이유로 투명인간 취급을 받아온 사람에게 처음으로 동등하게 말을 걸어준 사람이 박동훈이었다는 서사가 감정선의 근거가 됩니다. 저는 이 구조가 설득력이 있다고 봤습니다.
이지안이 "투명인간처럼 지냈다"고 표현한 것이 단순한 감정적 표현이 아닌 구조적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드라마가 노동 문제를 꽤 정확하게 담아냈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말하는 것, 박동훈과 이지안의 이별 이후
드라마가 끝나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사실 클라이맥스가 아닙니다. 이지안이 부산으로 떠나면서 "박동훈 덕분에 살아났고, 처음으로 살아봤다"고 말하는 장면,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박동훈이 사장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지안이 맛있는 밥을 사주겠다고 연락하는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이 결말이 로맨스인지, 은인과 은혜 입은 사람 사이의 존경으로 남는 건지 저도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애매함이 오히려 이 드라마의 정직함인 것 같기도 했습니다. 모든 관계를 명확한 카테고리에 넣어야 한다는 강박이 우리에게 있는데, 이지안과 박동훈의 관계는 그걸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지안이 박동훈에게서 "4번 이상 잘해준 첫 번째 사람"을 경험했다고 말하는 대사는, 이 이론의 맥락에서 읽으면 훨씬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잘해준 사람이 4번 이상 있다는 게 기준이 될 만큼 이지안에게 친절이 드물었다는 뜻이니까요.
이렇게 감정의 밀도가 높은 드라마는 보고 나서 바로 다른 걸 틀기가 어렵습니다. 여운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한 작품이었습니다. "사람은 사람으로 산다"는 말이 진부하게 느껴지지 않게 만드는 드라마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목록에 나의 아저씨는 분명히 들어갑니다.
결론
드라마 하나를 다 보고 나서 이렇게 오래 여운이 남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처음엔 그냥 중년 남자와 파견직 여직원의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다 보고 나니 결국 이 드라마가 하려던 말은 하나였다. 사람이 사람을 살린다는 것.
박동훈은 특별히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회사에서는 밀려나고, 집에서는 아내 문제로 무너지고, 형제들 사이에서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그런데도 자기보다 더 밑바닥에 있는 이지안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밥 한 끼 사주고, "전화해"라는 말 한마디 던지고, 힘들면 언제든 오라는 것. 대단한 위로도 아니고 거창한 구원도 아니다. 근데 그 사소함이 누군가에게는 살아갈 이유가 됐다는 게, 보는 내내 마음을 쿡쿡 찔렀다.
이지안이라는 인물이 특히 좋았다. 불쌍한 피해자로만 소비되지 않고, 도청도 하고 거짓말도 하고 이용도 당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사람으로 그려졌다. "옛날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대사를 듣고 있으면, 위로라는 게 꼭 다정한 말일 필요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오히려 담백하고 무심한 말이 더 오래 남을 때가 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회사 비리와 도청, 배신 같은 서브플롯이 얽히면서 중반부는 다소 정신없게 느껴졌고, 박동훈이 이지안의 잘못까지 다 끌어안는 태도가 가끔은 시혜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은 분명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아주 작은 온기들, 그게 쌓이면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믿음.
다 보고 나서 한동안 핸드폰을 못 만졌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나는 누군가에게 저런 "아저씨" 같은 존재였던 적이 있었나 생각했다. 오래 두고 다시 꺼내볼 것 같은 드라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mPhnHjs8d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