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좀비 드라마를 보고 나면 꼭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뉴토피아는 롯데타워라는 실제 공간을 배경으로 좀비 사태를 그려낸 작품인데, 보면서 단순히 재밌다는 감정만 느낀 게 아니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가볍게 틀었다가, 어느 순간부터 진지하게 감정이입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현실 가능성, 드라마로만 볼 수 없는 이유
솔직히 말하면 좀비물을 보면서 늘 한편에 걱정이 자리합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좀비 사태가 촉발되는 원인을 보면 대부분 바이러스 변이나 실험 과정의 오류에서 시작됩니다. 여기서 바이러스 변이란,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 안에서 복제되는 과정 중 유전자 정보가 달라지면서 기존과 전혀 다른 특성을 갖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실제로 이런 변이는 자연계에서도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저는 연구원도 아니고 그 분야를 공부한 사람도 아닙니다. 그래서 실험실에서 어떤 과정으로 테스트가 이루어지는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그냥 추측할 뿐이죠. 그런데 그 추측이 꼭 근거 없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실수가 생길 수 있고, 너무 마음 놓고 진행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질 수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건 사실입니다.
바이러스 감염 확산, 뉴토피아가 그린 현실적인 공포
뉴토피아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감염자가 처음 발견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롯데타워처럼 수많은 사람이 밀집한 공간에서 감염이 시작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인데, 보면서 소름이 돋았습니다. 밀폐된 고층 빌딩 안에서 탈출구가 제한되는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공포스러웠습니다.
드라마 속 좀비 바이러스는 비말감염(droplet infection) 방식으로 전파되는 것처럼 묘사됩니다. 비말감염이란, 감염자의 기침이나 체액이 튀면서 근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병원체가 전달되는 전파 경로를 말합니다. 실제 감염병 관리에서도 가장 기본적이면서 통제하기 까다로운 경로 중 하나입니다.
제가 직접 겪어본 건 아니지만, 팬데믹 시기에 마스크 하나 때문에 온 사회가 뒤집어지는 걸 목격한 세대로서 이 장면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드라마 속 군인과 민간인들이 뒤섞인 채 각자의 위치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모습은, 코로나19 당시 사람들이 각자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했던 모습과 묘하게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신종 감염병 발생 시 초기 72시간 이내의 대응이 확산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 변수라고 합니다.
생존 본능, 극한 상황에서 사람이 선택하는 것들

뉴토피아에서 제가 가장 몰입했던 장면은 재윤이 물건이 가득 실린 카트로 좀비 떼를 들이받는 장면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 상황에서 그 판단을 하기까지 얼마나 찰나의 순간이었을까 싶었습니다. 제가 저런 상황에 놓인다면 그런 순발력이 나올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보이는 반응을 심리학에서는 투쟁-도피 반응(fight-or-flight response)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투쟁-도피 반응이란, 위협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신체가 자동으로 싸우거나 도망치는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는 생리적 반응을 말합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행동이 단순한 영웅적 연출이 아니라 이런 실제 생리 반응과 맞닿아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들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좀비 사태처럼 예측 불가능한 재난 상황에서 제 몸을 지킬 수 있을까
-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락이 끊겼을 때 제대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 군인도 아니고 특별한 훈련을 받은 것도 아닌데, 과연 생존 가능성이 있을까
이 질문들에 쉽게 답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 드라마를 단순한 오락으로만 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뉴토피아가 좀비물 장르에 더하는 것
뉴토피아는 기존 좀비물과 달리 국내 최고층 빌딩이라는 공간적 설정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폐쇄적인 초고층 건물 안에서 식량이 떨어지고, 동료가 감염되고, 탈출 경로가 막히는 상황은 기존 외딴 섬이나 폐건물을 배경으로 한 좀비물과는 다른 밀도의 긴장감을 줍니다.
박정민이 연기한 재윤 캐릭터는 단순한 군인 영웅이 아닙니다. 여자친구와 이별 직전인 상태로 좀비 사태에 휘말리고, 군대라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 핸드폰 하나 자유롭게 못 쓰는 평범한 병사로 출발합니다. 그 평범함이 오히려 이 드라마를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건 아니지만, 저도 비슷하게 일상 속 작은 갈등을 겪다가 갑자기 큰 상황이 터졌을 때 멍하게 굳어버린 적이 있어서 재윤의 반응이 꽤 공감이 됐습니다.
라이노와 재윤이 호텔 내 독한 술을 이용해 화염병을 만드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화염병은 몰로토프 칵테일(Molotov cocktail)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인화성 액체를 담은 병에 불을 붙여 던지는 즉석 소이 무기를 말합니다. 전문 장비 없이 주변에 있는 것들을 활용해 생존을 도모하는 장면이 단순히 멋있어 보이는 게 아니라, 저라면 저런 발상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좀비물이 이렇게 많이 만들어지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단순히 무서워서가 아니라, 인간이 극한에 몰렸을 때 무엇을 선택하는가를 계속해서 묻는 장르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뉴토피아는 그 질문을 롯데타워라는 익숙한 공간 안에 풀어넣어 더 가깝게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아예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쉽게 단정하기보다는, 가끔은 이런 드라마를 보면서 저 자신이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재밌게 보면서도 작은 경각심을 가져가는 것, 그게 제가 좀비물을 계속 보게 되는 이유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