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도 병원 신세를 진 적이 있습니다. 군 입대 직후 급성폐렴으로 군병원에 한 달을 꼬박 있었는데, 처음엔 무섭고 불안했지만 막상 지내다 보니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런데 드라마 닥터섬보이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섬에서 갑자기 아프면 어떻게 되지? 헬기가 올 때까지 버텨야 하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질까.
공중보건의, 섬에서 혼자 감당해야 하는 현실
드라마 속 주인공 도지는 군 복무 대신 의료 취약 지역에서 3년을 근무해야 하는 공중보건의입니다. 공중보건의란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이 군 복무 대신 의료 소외 지역에서 일정 기간 의무적으로 근무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섬이나 오지처럼 병원 접근성이 낮은 곳에 배치되어 사실상 혼자 모든 진료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군병원에서 한 달을 보냈을 때, 아파도 주변에 의사와 간호사가 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안심이 됐습니다. 그런데 도지처럼 섬 하나를 혼자 담당하는 상황이라면 그게 얼마나 다를지 상상이 잘 안 됩니다. 의사 본인도 혼자고, 환자도 사실상 선택지가 없는 겁니다.
공중보건의 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의사 개인에게 너무 많은 것을 떠맡기는 구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의료 취약 지역의 공중보건의 1인당 담당 인구는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달하기도 합니다. 드라마처럼 혼자 섬 전체를 책임지는 그림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도지가 섬에 도착하기 전부터 부상자를 만나 창상 봉합술을 직접 시행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창상 봉합술이란 열상(찢어진 상처)이나 절상(베인 상처)을 세척한 후 실로 꿰매어 지혈하고 감염을 막는 응급 처치 기술을 말합니다. 도시 병원이라면 응급실에서 여러 의료진이 팀으로 처치하겠지만, 섬에서는 그 모든 것을 혼자 해내야 합니다.

심근경색 응급 처지, 섬에서 1분 1초가 다른 이유
드라마에서 가장 긴장감이 높았던 장면은 이장이 갑자기 흉통과 호흡 곤란을 호소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도지는 이를 급성 심근경색(AMI)으로 판단하고 즉각 니트로글리세린(NTG)을 처방합니다. 급성 심근경색이란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갑자기 막혀 심근 조직이 괴사하기 시작하는 상태로, 골든타임이 매우 짧아 빠른 처치가 생사를 가릅니다.
니트로글리세린(NTG)은 혀 밑에 넣어 혈관을 빠르게 확장시켜 심장의 부담을 줄이는 약물입니다. 쉽게 말해 막힌 혈관을 일시적으로 넓혀주는 응급약인데, 이 약에 반응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심혈관 문제를 강하게 시사하는 근거가 됩니다. 도지는 바로 이 약물 반응을 근거로 이장에게 큰 병원 이송을 강력히 권했지만, 이장은 처음엔 거부했습니다.
솔직히 이 장면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막상 저도 군병원에 있을 때 '여기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픈데도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게 불편했으니까요. 섬 주민들에겐 육지 병원이 그런 낯선 곳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배를 타야 하고, 멀미도 감수해야 하는데 거기다 불안감까지 더해지면 이송 자체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됩니다.
결국 이장은 쓰러졌고, 도지는 CPR(심폐소생술)을 시행한 후 헬기를 통한 긴급 이송이 이뤄졌습니다. CPR이란 심장이 멈추거나 기능이 현저히 저하되었을 때 흉부를 압박하고 인공호흡을 반복하여 혈액 순환을 강제로 유지하는 응급 소생술입니다. 대한심폐소생협회에 따르면 심정지 발생 후 4~6분이 지나면 뇌 손상이 시작되며, 10분을 넘기면 생존율이 급격히 낮아집니다.
섬 생활, 신기하면서도 대단하다고 느끼는 이유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제일 많이 생각한 건 사실 의료 시스템보다 섬 주민들의 일상이었습니다. 도지가 소동을 피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뱀이니 지네니 얘기를 태연하게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는 한 달이라는 짧은 입원 기간 동안도 아침마다 줄을 서서 약을 받아야 하는 게 그렇게 어이없게 느껴졌는데, 섬 주민들은 그보다 훨씬 근본적인 불편함을 매일 감수하며 살고 있는 겁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느껴집니다. 병원 생활의 불편함은 '일시적'이라는 사실이 버팀목이 됩니다. 언제 나간다는 날짜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섬 생활은 그 불편함이 구조 자체에 박혀 있습니다. 배편이 끊기면 나갈 수도 없고, 물건 하나 사려 해도 배를 타야 합니다. 거기다 멀미나 배 공포가 있는 사람이라면 매번 심리적인 장벽을 넘어야 하는 셈입니다.
드라마 닥터섬보이가 재미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 현실을 꽤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단순한 로맨스나 의학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로 어떤 사람들이 그 섬을 지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식이 저는 좋았습니다.
섬 의료 현실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보건복지부의 취약 지역 의료 지원 정책 자료를 한번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드라마 속 장면들이 허구가 아니라 현실의 단면이라는 걸 알고 보면, 보이는 것들이 달라집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드라마 감상을 바탕으로 한 의견 공유이며, 전문적인 의학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