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해결하지 못한 피해를 사설 조직이 대신 갚아준다는 설정, 처음엔 좀 황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모범택시를 보다 보니 제가 운전하면서 느꼈던 그 답답함이 그대로 화면 속에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독해졌는지, 그 현실이 드라마 한 편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복수 대행 서비스가 드라마가 된 이유: 응보적 정의와 현실 반영
모범택시의 핵심 설정은 이른바 복수 대행 서비스입니다. 무지개 운수라는 조직이 법의 테두리 밖에서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에게 응징을 가하는 구조입니다.
드라마에서 이 개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이 학교폭력 에피소드였습니다. 김도기가 가해 학생들에게 그들이 피해자에게 했던 방식을 그대로 돌려주는 장면, 즉 돈을 뜯기고 누명을 쓰고 빵을 강요당하는 상황을 직접 경험하게 만드는 방식이었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솔직히 속이 시원했습니다. 동시에 이걸 시원하다고 느끼는 제 자신이 조금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현실에서도 이런 답답함은 수치로 확인됩니다. 학교폭력 피해 신고 이후 학교나 교사의 대응이 적절했다고 응답한 피해 학생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즉, 제도권 내 구제 절차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다는 피해자들의 불신이 쌓이고 쌓인 결과, 이런 드라마가 공감을 얻는 것이라고 봅니다.
모범택시 속 또 다른 사례인 불법 촬영물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피해자의 언니 영상이 유데이터 서버에 저장되어 있었고, 고은이 직접 트래픽을 유도하여 배포 경로인 이른바 '광산'을 역추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트래픽 역추적이란 불법 콘텐츠의 유통망을 파악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속량을 집중시켜 서버 위치나 공유 경로를 특정하는 디지털 포렌식 기법의 일종입니다.
모범택시가 단순 오락물이 아닌 사회 고발 드라마로 읽히는 이유가 바로 이 지점입니다. 피해자들이 공식 채널을 통해 정의를 실현하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장면들, 경찰이 외면하고 검찰이 움직이지 않는 장면들이 반복됩니다. 드라마 속 설정이지만, 저는 보면서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독해진 세상, 드라마가 대신 풀어주는 것: 가스라이팅과 제도적 한계

제가 운전을 하다 보면 정말 이런 생각이 자주 듭니다. 아주 경미한 접촉 사고가 나도 상대방이 온갖 항목을 들이밀며 보상을 극대화하려 합니다. 반대로 제가 피해를 입은 입장이 되면, 오히려 제가 더 불리한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예전 같으면 "에이, 그냥 넘어가자"로 끝날 일이 지금은 절대 그렇게 끝나지 않습니다.
모범택시 속 유데이터 에피소드에서도 이 감각이 고스란히 나왔습니다. 대표의 갑질로 퇴사한 직원들이 가스라이팅에 희생되는 장면이 그것입니다.강하나 검사도 드라마 안에서 이 구조를 파악하고 피해자들이 얼마나 오래 그 안에 갇혀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저는 그 장면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았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나 심리적 조종에 의한 피해는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합니다.
모범택시가 인기를 끈 본질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법적 구제 절차, 즉 형사고소, 민사소송, 행정심판 같은 공식 채널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증거 확보도 어렵고, 결과도 불확실합니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는 또 한 번 소진됩니다. 드라마는 그 지점을 정확히 겨냥해서, "당신 대신 제대로 갚아드리겠습니다"라는 판타지를 제공합니다.
물론 드라마니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현실에서 무지개 운수 같은 조직이 있다면 그 자체가 또 다른 범죄입니다. 실제로 드라마 안에서도 강하나 검사가 그 경계를 계속 문제 삼습니다. 사설 감옥 운영 자체는 명백한 불법이고, 장 대표가 결국 책임을 지는 결말이 그것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그 불법성에도 불구하고 무지개 운수를 응원한 이유는, 그들이 대신 해결해 준 문제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그 감정을 부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모범택시가 단순한 액션 드라마를 넘어서는 이유는, 매 에피소드의 피해자들이 실제 우리 주변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피해자들이 제도 안에서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계속해서 회자되는 것은 그 현실 인식이 정확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독해졌다기보다는, 독해지지 않으면 손해 보는 구조가 먼저 만들어진 건 아닐까 싶습니다. 도와줬다가 오히려 피해를 입은 경험, 선의가 악용된 경험이 쌓이다 보면 누구든 방어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범택시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정을 아주 정확하게 건드린 드라마였습니다. 시즌 2가 예고된 만큼, 앞으로 어떤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고 올지 저는 이미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