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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으로서의 변호사: 이 드라마가 선택한 현실
9년 차 어소 변호사가 개업 대신 월급쟁이를 택한 이유로 "시키는 게 제일 마음 편하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습니다.어소 변호사라는건 처음 들어봤는데 궁금해서 찾아보니, 로펌에 고용된 소속 변호사를 뜻하며, 파트너 변호사처럼 수익을 배분받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월급을 받고 일하는 구조라고 나왔습니다. 이 한 문장이 드라마 전체의 결을 설명해 준 것 같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건, 이 작품이 영웅적 법조인 서사를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세무사 폭행 사건, 보이스피싱 국선 변호, 편의점 절도처럼 뉴스 헤드라인에도 안 나올 사건들이 메인 서사 옆을 채웁니다.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소비되는 대형 로펌의 권모술수 대신, 진짜 '월급 받는 변호사'의 하루를 택한 선택이 꽤 설득력 있었습니다.
- 어소 변호사: 로펌에 고용된 소속 변호사. 개업 없이 월급 구조로 일함
- 파트너 변호사와 달리 수익 배분 없이 안정적 급여를 받음
- 드라마는 이 구조를 영웅적 서사 대신 '직장인의 현실'로 풀어냄
소소한 사건들이 남긴 것: 감정의 무게를 나눈 방식
정순자 씨 사건을 보다가 잠깐 멈췄습니다. 10년 동안 아픈 동생을 혼자 돌보다가 결국 손을 댄 사람. 그 사람이 "말기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안도부터 했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죄를 저질렀는데 그 안도감이 이해됐으니까요. 법이 죄를 판단하는 방식과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는 방식이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 이 장면 하나가 그걸 설명했습니다.
박만수 할아버지의 땅 찾기 에피소드도 비슷한 결이었습니다. 자기 땅도 아닌데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며 나서는 인물. 일제강점기 지적도, 즉 토지의 경계와 소유자를 기록한 공적 장부를 근거로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이 꽤 정교했습니다. 법정 드라마인데 결국 하고 싶은 얘기가 사람 사이의 신의였다는 것, 이 작품의 결이 뭔지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였습니다.
문정의 떡볶이집 레시피 도용 사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허를 받지 못한 레시피라도 영업 비밀에 해당하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논리, 그리고 인테리어까지 동일하게 모방한 것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으로 엮어낸 방식은 실제 법리를 꽤 성실하게 반영했습니다.
인물 서사의 완성도와 한계: 각자의 무게를 가진 조연들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 건 조연 설계입니다. 문정의 임신과 육아휴직 고민, 상기의 흙수저 출신과 박사 과정 사이의 갈등, 창원의 구치소 접견에서 시작해 검사 준비로 이어지는 흐름. 이 인물들이 그냥 스쳐가는 배경이 아니라 각자의 무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희지가 국선 전담 변호사를 택하는 동기가 자기 아버지의 투자 사기 사건을 직접 겪은 뒤라는 설정은, 인물의 직업적 선택에 서사적 근거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높았습니다. 수임료가 없어 기피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희지가 그 길을 택하는 맥락이 충분히 쌓여 있어 억지스럽지 않았습니다.
반면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이 드라마의 가장 큰 약점은 분량 배분입니다. 정순자 씨 사건처럼 무겁게 다뤄야 할 이야기도 다음 화로 넘어가면 금방 다른 사건에 묻히고, 여운을 충분히 소화하기 전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느낌이 반복됐습니다. 창원의 검사 준비, 상기의 박사 과정, 희지의 국선 전담 지원, 주영의 개업이 마지막에 한꺼번에 정리되는 것도 조금 급조된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혁민이라는 인물은 제가 아직도 궁금합니다. 건물주이자 대표로서 계속 알 수 없는 선택들을 하다가("우리 하던 대로 하자"), 결국 사업을 정리하는 방향으로 가는데, 그 진짜 동기가 끝까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캐릭터의 여백이 의도된 것인지, 서사가 덜 다듬어진 것인지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결론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작품이 굳이 소리치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거였다. 세무사 폭행 사건, 편의점 절도, 떡볶이집 레시피 도용 같은 자잘한 사건들 사이사이에 변호사들의 하루가 조용히 쌓여갔다. 그 방식이 오히려 정직하게 느껴졌다.
가장 마음에 남은 건 역시 정순자 씨 사건이었다. 10년 동안 아픈 동생을 혼자 돌보다 결국 손을 댄 사람이 "말기 암 진단을 받았을 때 안도부터 했다"고 고백하는 장면. 죄는 죄인데, 그 안도감이 뭔지 너무 이해가 가서 마음이 복잡했다. 희지가 정상 참작을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고 "죄 지은 만큼만 벌 받으라"고 말하는 태도가, 이 드라마가 법을 대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정순자 씨의 집행유예, 찬영의 집행유예, 명호의 무죄. 결과들은 하나같이 화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더 오래 남았다. 승리의 짜릿함 대신, 그 결과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정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이 드라마의 진짜 알맹이였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에피소드 수에 비해 각 사건이 소비되는 속도가 빨라서, 무겁게 다뤄야 할 이야기도 다음 화로 넘어가면 금세 다른 사건에 묻혀버렸다. 여운을 충분히 느끼기도 전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게 이 드라마의 구조적인 한계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법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이 정도로 담담하게 다룬 작품은 오랜만이었다. 법정 드라마가 그리워질 때, 혹은 직장인으로서의 현실감 있는 이야기가 필요할 때 조용히 꺼내보고 싶은 드라마였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I21xak25_F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