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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감이 아니라 단서,반성 없는 악마들,아쉬움)

leedm00 2026. 10. 27. 19:29

목차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드라마 포스터

    감이 아니라 단서로 쌓아 올린 추리

    첫 사건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냉동된 채 깔끔하게 절단된 시신이 발견되는 장면에서는 화면을 똑바로 보기가 어려웠어요. 그런데 송하영은 그 끔찍한 현장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습니다. 눈과 혀까지 훼손된 모습을 보고, 이건 시신을 옮기려고 한 일이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다고 짚어냅니다. 절단이 지나치게 능숙하다는 점에서 정육점이나 도축 일을 해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꺼내고요. 처음엔 저도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추론들이 하나씩 맞아떨어지는 걸 보며 소름이 돋았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냉장고 선반에 눌린 자국이었습니다. 다들 그냥 지나칠 법한 흔적인데, 분석팀은 그걸 붙잡고 고물상과 전파상을 하나하나 돌아다닙니다. 그러다 1988년에 만들어진 냉장고 바닥에서 피해자의 흔적을 찾아내죠. 범행 도구에서 지문이 딱 세 개만 나왔다는 사실로 범인의 손가락이 온전하지 않다는 걸 추리하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로 범인 조영길은 공사 현장 사고로 손가락 두 개를 잃은 사람이었고, 피해 아이의 손가락 두 개가 사라진 이유도 거기서 드러납니다. 그 순간엔 정말 말문이 막혔습니다. 한 사람이 살아온 시간과 범행이 그렇게 맞물려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이 드라마가 좋았던 또 하나의 이유는 프로파일링을 만능처럼 그리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송하영이 공들여 쓴 보고서는 기존 수사팀에게 무시당하고, 일손은 늘 모자랍니다. 결국 신입 형사가 낸 아이디어 덕분에 지역 성범죄 전과자들을 한 명씩 확인하게 되고, 주소지 이전 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을 찾아내면서 실마리가 풀립니다. 용의자의 집에 들어갔을 때 보고서에 적힌 그대로 정리정돈이 되어 있던 장면은 통쾌하면서도 묘하게 서늘했습니다. 화려한 한 방이 아니라 지루하고 고된 확인 작업이 쌓여서 범인에게 닿는다는 걸 보여준 게 오히려 더 믿음이 갔어요.

    반성 없는 악마들, 그리고 그 앞에 선 사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상대해야 하는 범인들도 점점 무거워집니다. 부잣집만 골라 범행을 저지르던 구영춘은 범행 사이의 간격이 처음엔 2주 정도였다가 점점 짧아집니다. 송하영이 그 변화를 읽어내고 경고하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등이 서늘해졌습니다. 공개수배를 하면 범인이 잠시 주춤할 거라는 판단, 마지막 범행까지 한 달이 걸린 이유를 범인의 망설임에서 찾는 시선도 흥미로웠고요. 그런데 정작 구영춘은 공개수배 이후에도 대담하게 돌아다니며 방법을 더 연구합니다. 그 장면에서 이 사람은 정말 다른 세상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화가 났던 건 취조실 장면이었습니다. 구영춘은 화장실 문턱을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선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사람의 생사를 쥐고 있었다는 듯 과시합니다. 시신을 버린 곳에 표시를 해둔 이유를 묻자 배려였다고 답하죠. 화가 치밀다가 나중엔 허탈해지더라고요. 그리고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말을 바로 앞에서 듣고도 표정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채 다음 질문을 이어가야 하는 송하영은 대체 어떤 상태일까.

     

    남기태와 우호성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남기태는 여자에게만 강하고 남자 앞에서는 약한 비겁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살인을 추억처럼 여깁니다. 우호성은 증거를 다 태워놓고 오히려 자기 차에 불이 났다고 신고하는 뻔뻔함을 보이죠. 송하영이 우호성의 아들 이야기를 꺼내며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 가는 장면, 피해자 한 명의 사진을 여러 장처럼 보여주며 스스로 여러 명을 해쳤다는 걸 인정하게 만드는 장면은 이 드라마에서 손에 꼽을 만큼 긴장감이 넘쳤습니다. 결국 그는 일곱 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하지만, 끝까지 피해자들이 자신을 좋아했다고 믿습니다. 세 사람 모두 반성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그 점이 범행 자체만큼이나 끔찍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송하영은 무너집니다. 두 명의 연쇄 살인범을 연달아 마주한 뒤 결국 병원에 실려 가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게 되죠. 저는 이 장면이 이 드라마의 진짜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악의 마음을 오래 들여다볼수록 자신도 그쪽으로 끌려갈 수 있다는 것. 동료들의 걱정, 피해자 어머니의 응원, 예전에 만났던 피해자와의 기억이 그녀를 다시 돌아오게 만듭니다. "사무실에서 뵙죠"라는 짧은 한마디가 그렇게 뭉클할 줄은 몰랐습니다.

    다 보고 나서 남은 아쉬움과 질문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범행 장면이 생각보다 구체적으로 나와서 보는 게 꽤 힘들었어요. 긴장감을 위해 필요한 연출이었다는 건 알겠지만,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면 유가족들이 이 장면을 어떤 마음으로 볼까 하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습니다. 조금만 덜 보여줘도 충분히 무게가 전해졌을 것 같아요.

     

    프로파일링을 무시하던 형사들이 대부분 꼰대로만 그려진 것도 조금 아쉬웠습니다. 현실에서 새로운 수사 방식에 회의적인 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었을 텐데, 그 사람들의 입장도 한두 장면쯤 보여줬다면 이야기가 더 입체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윤태구와 송하영의 오래된 오해가 풀리는 과정은 꽤 좋았습니다. 옳은 일을 하고도 손가락질받던 윤태구가 구영춘을 마무리하는 장면에서, 두 사람 사이에 쌓여 있던 감정이 조용히 풀리는 게 느껴졌거든요.

     

    끝까지 남는 질문도 하나 있습니다. 송하영은 그 많은 악의를 마주하고도 어떻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을까요. 주변 사람들의 응원만으로 정말 충분했을지,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그 물음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어쩌면 그 답은 그녀가 피해자들에게 건네던 작은 꽃다발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범인의 마음을 읽으면서도 끝까지 피해자 쪽에 서 있으려 했던 그 마음 말이에요.

     

    범인의 결핍이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장면들에서는 조심스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혹시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이해로 흘러가 버리진 않을까 하고요. 이유를 아는 것과 용서하는 건 분명히 다른 일입니다. 천사와 악마는 한 끗 차이라는 말이 드라마 내내 나오는데, 저는 그 한 끗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을 놓치지 않고 본다면, 이 드라마는 단순한 범죄물 이상의 무언가를 남겨줍니다.

     

    다 보고 나서 가장 오래 생각한 건 범인의 잔혹함이 아니라, 그 잔혹함을 매일 들여다봐야 하는 사람의 마음이었습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송하영이 피해자들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장면까지 꼭 보시길 권하고 싶어요. 그 장면이 이 모든 이야기가 존재하는 이유처럼 느껴질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A_nfCeZSNF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