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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커버 (이름을 두 개 가진 남자의 선택,한정현의 일상, 공수처장 도전)

leedm00 2026. 10. 16. 12:07

목차


    언더커버

    드라마 '언더커버' 후기, 이름을 두 개 가진 남자의 선택

    드라마를 보다 보면 사건보다 사람이 먼저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는데, 언더커버가 딱 그랬습니다. 공수처, 국정원, 재심 같은 무거운 단어가 줄줄이 나오는데도 보고 나서 머릿속에 남은 건 한 남자의 표정이었습니다. 이름을 두 개 가지고 살아온 사람이 아내 앞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웃고 있는 얼굴이요. 2021년 JTBC에서 방영된 작품이고 영국 원작 드라마를 한국 상황에 맞게 옮겼다고 하는데, 저는 원작을 보지 않고 이 드라마만 봤습니다. 그래서 비교 없이 제가 본 만큼만 적어보려고 합니다. 스포일러가 조금 섞여 있으니 참고해 주세요.

     

    이석규라는 이름이 흔들어놓은 한정현의 일상

    이야기의 중심은 한정현이라는 남자입니다. 본래 이름은 이석규였고, 경찰대학에 다니다 안기부 요원으로 발탁됐습니다. 맡은 일은 학생운동권 김태열을 감시하는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최연수에게 접근하게 됩니다. 처음엔 임무 때문에 시작된 만남이었는데 어느 순간 진짜 감정이 되어버렸다는 게 이 드라마의 출발점입니다. 1991년 시위 현장에서 호송차에 실린 학생들을 빼내려고 일부러 소란을 피우던 남자가 서로 이름을 주고받는 첫 장면은, 뒤의 사정을 알고 나면 전혀 다르게 보입니다. 그때는 몰랐던 의미가 나중에 붙는 느낌이라 첫 장면을 다시 돌려보고 싶어졌습니다.

     

    도형걸이 잃어버린 반려견을 데리고 나타나 이석규라는 이름을 꺼내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습니다. 겉으로는 개를 돌려주는 호의인데 속뜻은 어디에 숨어 있어도 우리 손바닥 안이라는 경고였으니까요. 그 이름 석 자 하나로 지금까지 쌓은 가정이 흔들릴 수 있다는 걸 한정현도, 보는 저도 동시에 알아버렸습니다. 게다가 도형걸의 요구는 아내 최연수가 초대 공수처장이 되는 걸 막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지켜야 할 사람이 막아야 할 사람이 되어버린 겁니다.

     

    한정현이 그 사실 앞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장면을 보며 저라면 어떻게 했을까 한참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과거를 털어놓자니 가정이 무너지고, 입을 다물자니 아내가 위험해집니다. 친아버지가 치매에 걸린 사실을 가족 몰래 혼자 돌보는 모습도 같은 결로 읽혔습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일을 하나둘 끌어안고 사는 사람의 어깨가 화면 내내 보였습니다. 답답하면서도 그 침묵이 이해가 됐던 건, 말하는 순간 모든 게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저에게도 아주 낯설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최연수의 공수처장 도전, 그리고 청문회에서 남은 장면

    최연수 쪽 이야기도 만만치 않습니다. 인권 변호사로 30년 가까이 억울하게 갇혀 있는 황정호의 재심 사건을 붙들고 있는데, 황정호는 말기암이라 시간이 없고 형 집행 정지 심사는 계속 미뤄집니다. 그런 상황에서 공수처장 제안이 들어오니 최연수는 이 사건 때문에 거절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황정호 본인이 직접 그 자리를 맡으라고 설득합니다. 새 변호사까지 미리 준비해 두고서요. 자기 사건을 내려놓고 더 많은 사람을 위한 싸움을 이어가라는 부탁이라, 이 장면이 저한테는 가장 오래 남았습니다. 큰 소리 한번 없이도 사람의 무게가 전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중반의 축은 국정원 직원 차민호의 죽음입니다. 그의 아내가 최연수를 찾아와 남편의 죽음이 이상하다고 호소하고, 경찰은 자살로 결론을 내리지만 최연수는 의구심을 품습니다. 추동우 검사도 사망 원인이 위조된 보고서를 발견하면서 같은 곳을 향해 가고요. 차량 흔적이 이미 지워져 있다는 대목에서는 훨씬 위쪽의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러다 차민호가 과거 언더커버 요원이었고 물품 보관함 서류에 이석규의 신분증이 들어 있었다는 게 드러나면서, 따로 흐르던 두 이야기가 한 줄로 이어집니다. 이 지점에서 서사가 확 조여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인사청문회 장면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아들 승구가 자폐로 군 면제를 받은 일과 사업 활동이 공격 소재로 올라오는데, 최연수가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는 순간 정치 드라마를 보고 있다는 걸 잠깐 잊었습니다. 앞서 승구의 폭행 영상이 공개돼 곤경에 처했지만, 알고 보니 데이트 폭력 피해자를 돕다 생긴 일이었다는 것도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어서 최연수가 변호했던 위장 탈북 간첩 김하순이 북한 방송에 나온 영상이 공개돼 분위기가 뒤집히는데, 그 와중에도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모습이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잘 보여줬습니다.

     

    김하순이 위독한 어머니를 모시러 북한에 갔다가 공항에서 국정원에 납치당하듯 사라지는 대목부터는 긴장이 최고조였습니다. 임명이 불투명해진 최연수 앞에 한정현이 김하순을 데리고 나타나는 장면은 통쾌했습니다. 아내를 막아야 하는 입장이던 사람이 아내를 위해 움직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울림이 컸어요. 기자들이 몰려들어 국정원의 체포가 무산될 때는 속이 시원했는데, 한편으로는 한정현이 돌아갈 곳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짠했습니다.

    아쉬운 점과 총평, 그리고 앞으로 궁금한 것들

    아쉬운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한정현이 도형걸에게 보관함 서류를 넘기는 대목은 왜 그랬는지 충분히 설명되지 않아서 잠깐 어리둥절했습니다. 뒤에서 의도가 밝혀질 수도 있겠지만, 보는 입장에서는 따라가는 데 약간의 수고가 필요했습니다. 또 차민호 사건, 승구 스캔들, 김하순 실종이 정리되기도 전에 다음 사건이 닥쳐오다 보니 숨이 찼습니다. 국정원이 납치와 증거 인멸을 너무 쉽게 반복하는 것도 다소 도식적으로 느껴졌고, 악역이 한 덩어리로 그려지다 보니 현실이 가진 복잡함이 줄어든 느낌도 있었습니다. 해고됐던 도형걸이 곧바로 공수처 보안팀장으로 나타나는 마지막도 반전은 반전인데, 조금 급하게 던진 인상이었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은 분명한 드라마였습니다. 정치 스릴러의 긴장감과 가족 드라마의 감정이 서로를 받치고 있어서, 한쪽이 흔들리면 다른 쪽이 빈틈을 메워줍니다. 설정이 도식적이어도, 전개가 빨라도, 한정현이라는 인물의 갈등 앞에서는 크게 거슬리지 않았습니다. 탄탄한 서사와 배우들의 연기가 호평받았다는 이야기가 괜한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궁금한 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차민호의 죽음에 국정원 선배들이 정확히 어디까지 관여했는지, 도형걸이 입에 올린 '화수분'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그리고 한정현이 언제쯤 아내에게 모든 걸 털어놓을지입니다. 제 생각에 이 드라마의 진짜 파국은 총격이나 납치가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의 진실을 마주하는 순간에 올 것 같습니다. 그 장면을 기다리면서 남은 이야기를 이어서 볼 생각입니다.

    정치 이야기만 나오는 드라마는 부담스럽고 가족 이야기만 나오는 드라마는 심심하다 싶은 분께 권하고 싶습니다. 가볍게 볼 작품은 아니지만 보고 나면 한참 생각이 남습니다. 이름을 숨기고 산다는 것, 과거를 감춘 채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떤 모양일지 궁금하다면 한 번쯤 볼 만한 드라마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SdnahAWv4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