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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건 그 시절 노래나 패션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온도가 아닐까?" 《응답하라 1997》을 처음 틀었을 때, 저는 그저 복고 드라마 한 편을 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화면 속 골목길과 슈퍼, 그리고 친구 집 밥상을 보는 순간, 제가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몸으로 기억하는 느낌이 올라왔습니다. 그 시절이 단순히 '낡은 시대'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품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추억 - H.O.T.와 팬덤이 만든 그 시절의 온도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H.O.T.의 '캔디'가 흘러나옵니다. 주인공 시원이 그 노래를 들으며 작가 10년 차가 된 자신을 돌아보는 장면에서, 저도 모르게 멈칫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복고 드라마니까 그냥 흘러가겠지 싶었는데, 그 짧은 장면 하나가 꽤 오래 마음에 걸렸습니다.
드라마 속 팬덤 문화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다소 과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멤버의 땀 냄새가 밴 티셔츠를 받기 위해 팬클럽 이벤트에 줄을 서고, 방송에 나온 곰인형이 시원이 준 거라며 열광하는 장면은 지금 기준으로는 낯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광기 어린 집착 안에는 무언가 순수한 게 있었습니다. 아이돌 팬덤(fandom)이란 단순히 특정 연예인을 좋아하는 집단을 넘어서,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연대하는 하나의 공동체 문화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낯선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시절의 접착제 같은 존재였습니다.
시원이 윤제에게 매년 손수 만든 쿠폰을 생일 선물로 건네는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살면서 가장 가난한 선물이면서 동시에 가장 마음이 많이 담긴 선물이 그 쿠폰 아니었을까요. 제 경험상 이런 감각은 물건을 살 돈이 없어서 생긴 게 아니라, 물건보다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던 시대가 만들어낸 습관이었습니다. 드라마는 그 디테일 하나로 시대 전체를 설명해 버렸습니다.
당시 부산 광안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교실 풍경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H.O.T. 멤버 이름을 대며 학생들을 혼내는 장면에서 웃음이 터졌는데, 동시에 그게 그 시절 교실의 진짜 모습이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배우들이 그 분위기를 정말 잘 살려냈다고 생각했습니다.
- H.O.T. '캔디' — 90년대 1세대 아이돌 팬덤 문화의 상징
- 손수 만든 쿠폰 선물 — 물질보다 마음이 우선이던 시절의 단면
- 교실 속 선생님과 팬덤 충돌 — 세대 간 문화 간극의 유머러스한 표현
공동체 - 친구 집 밥상이 우리 모두의 밥상이었던 시절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가슴이 먹먹했던 건 사실 H.O.T.가 아니었습니다. 시원이 윤제네 집에서 생일 미역국을 먹는 장면이었습니다. 가자미가 들어간 미역국이 맛없다고 투덜거리면서도 한 그릇을 다 비우는 그 장면에서, 제가 어릴 적에 친구네 집에서 먹던 밥상이 떠올랐습니다.
그때는 정말 그랬습니다.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친구 어머니께서 뭐라도 꼭 내주셨고, 저녁 때가 돼도 "밥 먹고 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건 단순한 친절이 아니었습니다. 내 아이 옆에 있는 아이도 함께 키운다는 감각, 지금 말로 하자면 공동 양육 문화(Co-parenting Culture)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공동 양육이란 부모 한 쌍이 아닌 지역 공동체 전체가 아이의 성장에 관여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당연한 게 아니었는데, 그 시절엔 그냥 일상이었습니다.
친구 어머니께서 저희 집에 직접 전화해서 "여기서 놀고 있어요"라고 알려주시던 기억도 납니다. 지금이라면 아이의 위치를 GPS로 확인하고 문자로 소통하겠지만, 그때는 이웃과 이웃이 직접 목소리로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그 전화 한 통이 부모의 걱정을 다 해결해 줬고, 아이는 아무 불안 없이 해가 질 때까지 뛰어놀 수 있었습니다.
복고감성 - 낡아 보이는 것들이 왜 자꾸 그리운가
솔직히 드라마 속 배경을 보면서 처음엔 '많이도 낡았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비디오테이프, 게스(Guess) 짝퉁 가방, 골목 슈퍼, 허름한 교실. 지금과 비교하면 모든 게 불편하고 조악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장면들을 보는 내내 이상하게 편안했습니다. 그 감각이 뭔지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레트로(Retro) 감성이라는 말을 요즘 많이 씁니다. 레트로란 과거의 스타일이나 문화를 현재 시점에서 재소환하여 향수를 자극하는 문화 트렌드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예전 것을 '낡았다'가 아니라 '좋았다'로 읽는 시선의 전환입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단순히 옛날 물건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그 물건들과 함께했던 사람 사이의 온도가 그리운 것입니다.
드라마 속 시원이 비디오테이프를 볼 때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다"고 느끼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 감정이 저는 꽤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때 느낀 건, 우리가 복고를 소비하는 방식이 사실 현재에 대한 결핍을 드러내는 행위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세상은 많이 편해졌지만, 그 편리함을 채우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도움조차 두려워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다가갔을 때 오히려 범죄자 취급을 받는 분위기가 생기다 보니, 남의 일에 관심을 갖는 것 자체가 리스크가 됐습니다.
요약: 복고감성이 자꾸 소환되는 이유는 낡은 물건 때문이 아니라, 그 시절 사람 사이의 신뢰와 온도가 지금 현저히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응답하라1997이 지금도 인기 있는 이유가 뭔가요?
A. 드라마가 재현한 90년대 시대 고증의 정밀함도 있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지금 시대가 잃어버린 공동체 감각과 사람 사이의 온도를 화면 안에 그대로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을 직접 살지 않은 세대도 공감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 있습니다. 물질보다 관계가 먼저였던 감각은 세대를 넘어 통하는 것 같습니다.
Q. H.O.T. 팬덤 문화가 그 시절에 왜 그렇게 열광적이었나요?
A. 지금처럼 SNS나 실시간 스트리밍이 없던 시절이라, 좋아하는 가수의 모습을 보기 위해 녹화 비디오테이프 한 장, 방송 한 컷에 모든 감정을 쏟아부었습니다. 정보가 희소할수록 그것을 향한 열망은 강해지게 마련입니다. 지금 팬덤 문화와 달리 온라인 커뮤니티 없이도 사람들이 직접 모여 감정을 나눴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강한 연대감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요즘 세상과 그 시절을 비교하면 무엇이 가장 많이 달라진 건가요?
A. 생활의 편리함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아졌지만, 사람 사이의 신뢰는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이웃이 내 아이를 같이 챙기는 게 당연했는데, 지금은 남의 아이에게 좋은 의도로 다가가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시대가 됐습니다. 편리함을 얻으면서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잃어온 셈입니다.
Q. 90년대생들이 특별히 더 올바르게 자랐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A. 물론 세대 전체를 일반화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만, 경쟁보다 협력을 먼저 배운 환경에서 자란 세대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도우며 지내는 방식이 일상이었던 경험이, 그 세대의 사고방식 형성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이것 역시 사회적 자본이 개인에게 미치는 효과 중 하나로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응답하라 1997》은 복고 드라마가 아닙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이게 과거를 재현한 작품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놓친 것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H.O.T.와 팬덤, 친구 집 밥상, 골목 슈퍼, 손으로 만든 쿠폰 선물. 그 하나하나가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기대도 됐던 시절'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오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시대가 변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고, 도움을 주는 것조차 부담이 되는 사회로 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그냥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 한 번쯤, 내 옆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네보는 것부터 시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작은 것부터라도 그 온도를 다시 만들어가는 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