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처음부터 선을 넘던 검사, 진정이라는 사람
드라마는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중앙지검 형사부 검사 진정이 리치펀드 대표 김영균의 뒤를 봐주는 척 슬쩍 접근하더니, 결국 비밀 장부가 어디 있는지까지 알아냅니다. 처음엔 이 사람이 진짜 검사가 맞나 싶었어요. 말투나 행동이 워낙 능청스러워서 오히려 비리 검사처럼 보였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처음부터 김영균을 잡으려고 판을 짜 놓은 거였고, 연극 한 편을 제대로 꾸며서 일당을 한 번에 쓸어 담습니다. 이 오프닝에서 이미 이 드라마가 어떤 분위기로 갈지 감이 왔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다음 장면이었습니다. 보통 이런 장면이면 주인공이 박수받고 끝나기 마련인데, 진정은 선배 검사 아라에게 혼자 멋대로 움직였다고 한 소리를 듣습니다. 성과는 냈는데 칭찬 대신 구박을 받는 상황. 이게 저한테는 오히려 제일 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회사에서든 어디서든 결과가 좋아도 절차를 안 지켰다고 눈총받는 경우, 한 번쯤은 겪어보셨을 거예요. 저도 그 장면에서 괜히 뜨끔했습니다.
물론 진정의 방식이 다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분을 숨기고 상대를 속여서 증거를 얻어내는 건 화면으로 볼 때야 통쾌하지만, 현실이었다면 절차 문제로 꽤 시끄러웠을 겁니다. 드라마는 이 부분을 대놓고 다루진 않지만, 아라의 잔소리를 통해 슬쩍 짚고 넘어가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첫 에피소드부터 '이 사람의 정의는 어디까지 허용될까' 하는 질문을 품고 보게 되더라고요.
진정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는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풀립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던 아이였고, 검도를 하던 그 아이가 칼이 아닌 진짜 검, 그러니까 불의를 응징하는 검사가 되겠다고 마음먹는 장면이 나옵니다. 듣고 보면 단순한 설정인데 묘하게 잘 박혔어요. 캐릭터의 출발점이 단단하니까 뒤에 나오는 무모한 행동들도 '저 사람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하고 넘어가게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보고 나니, 진정의 선택 하나하나가 결국 이 짧은 회상 장면으로 다 설명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손버릇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꿨다
이 드라마에서 제가 가장 오래 붙잡고 있었던 장면은 화려한 체포씬이 아니었습니다. 서초동에서 피해자 예영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고, 20대 택배 기사 김효준이 범인으로 붙잡히는 사건이었어요. 언뜻 보면 이미 끝난 사건입니다. 범인도 잡혔고, 언론도 떠들썩하고, 다들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 분위기였죠.
그런데 진정만 고개를 갸웃합니다. 흉기에 남은 지문과 효준의 손버릇이 맞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는 처음에 이게 그렇게 큰 의미가 있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진정이 부장검사 태우의 승인을 받아 다시 파고들기 시작하니까, 담당 형사가 흉기 지문이 찍힌 영상을 지우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작은 위화감 하나를 그냥 넘기지 않은 덕분에 사건이 완전히 뒤집힌 거죠. 결국 형사의 자백까지 받아내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언론 압박이 거세지자 차장검사 장원이 진정에게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지시하고, 선배 도안마저 윗선과 딜을 하고 효준을 기소해 버립니다. 이 대목에서 솔직히 숨이 턱 막혔어요. 증거가 있고 의심할 만한 이유도 분명한데, 윗선이라는 말 한마디에 모든 게 덮여 버리는 구조. 드라마니까 과장했겠지 하고 넘기기엔 어디선가 뉴스로 본 것 같은 장면이라 더 씁쓸했습니다.
효준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더 무섭습니다. 매일 택배 상자를 나르던 평범한 청년이 어느 날 갑자기 살인범이 되어 있는 거잖아요. 만약 진정이 그 손버릇을 눈여겨보지 않았다면, 그는 그대로 감옥에 갔을 겁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사소한 디테일 하나에 매달려 있다는 게 보는 내내 마음을 무겁게 했어요. 저는 이 파트가 드라마 전체에서 가장 진심이 느껴지는 구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지나도 이 작품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날 장면도 아마 여기일 것 같아요.
불량품들이 끝까지 버텨서 만든 결말
사건에서 밀려난 진정은 결국 민원봉사실로 좌천됩니다. 검찰청 안에서 '불량품 폐기실'이라고 불리는 곳이라는데, 이름부터 웃프더라고요. 그곳에서 선배 검사 박재경, 수사관 철기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합니다. 피해자 예영이 강남 유흥업소 대표 유진철과 스폰서 관계였고, 그 유진철이 이장원 차장과 엮여 있다는 정황이 하나둘 드러나요.
이 부분부터는 정말 숨 돌릴 틈이 없었습니다. 유진철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차장의 비리가 담긴 저장장치와 사진을 손에 넣고, 중국으로 빠져나가려는 유진철을 공항에서 붙잡기 위해 폭탄 소동까지 벌입니다. 그리고 장원의 지검장 취임식 날 폭로 영상을 터뜨리는 장면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시원한 순간이었어요. 초반의 아기자기한 수사극이 이렇게 큰 판으로 번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도안이 유진철을 빼돌려 진술을 뒤집게 만들고, 장원은 풀려나지만 끝내 의문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어요. 그리고 그 뒤에 국내 최대 로펌 강산의 대표 서현규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법무부와 중앙지검장까지 쥐고 흔드는 사람이었고, 믿었던 부장검사 태우마저 그의 사람이었죠. 진정은 장원 살해 누명까지 쓰게 되는데, 이쯤 되니 이걸 대체 어떻게 수습하나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재경이었습니다. 과거에 가족을 잃은 상처를 안고 서현규를 무너뜨릴 증거를 지켜오다 습격을 당하는 장면에서는 한동안 화면을 멍하니 보고 있었어요. 그래서 법정에 재경이 증인으로 걸어 들어오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숨을 들이켰습니다. 도안이 넘긴 흉기, 태우의 양심 고백까지 더해지면서 서현규에게 사형이 구형되고, 예영 사건의 진범이 그의 아들 서지한이었다는 것도 밝혀집니다.
다 보고 나서 정리해 보면, 이 드라마의 힘은 단순한 권선징악보다 '진실은 작은 의심에서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끝까지 놓지 않았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손버릇 하나, 지워질 뻔한 영상 하나, 그리고 불량품 취급받던 사람들이 끝까지 버텨낸 시간. 저한테는 이게 꽤 오래 남았습니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습니다. 유흥업소 비리에서 대형 로펌, 가습기 살균제 사건까지 줄줄이 이어지다 보니 초반 효준의 억울함에서 느꼈던 묵직함이 뒤로 갈수록 조금 옅어졌어요. 재경이 살아 돌아온 것도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앞에서 흘린 슬픔이 살짝 허무해지기도 했고요. 폭탄 소동이나 무단 잠입처럼 법 밖에서 휘두르는 정의가 결국 서현규와 어디서 선을 긋는 건지, 그 질문을 조금 더 붙잡아줬다면 훨씬 깊은 작품이 됐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모든 게 끝난 뒤 진정이 다시 민원봉사실로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참 좋았습니다. 아라는 부장검사로 승진하고, 진정은 여전히 꼴통 검사로 남아 정의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그 모습이 오히려 가장 진정다운 결말이었어요. 이 드라마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초반 효준 재수사 파트부터 꼭 집중해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이 작품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가 그 안에 이미 다 담겨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