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도 가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지금이 나쁜 건 아니지만, 조금 다르게 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이요. 드라마 속 이한영 판사는 그 기회를 실제로 얻습니다. 죽은 뒤 10년 전으로 돌아가 자신의 부패한 삶을 다시 쓰는 이야기인데, 보면서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법 현실을 꽤 날카롭게 짚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35년 대한민국, 그 사법부패의 구조
드라마의 배경은 2035년입니다. 노숙자 추방 조례가 통과될 만큼 빈부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진 사회입니다. 그 최상위 계층에 이한영 판사가 있고, 그는 사법권력을 개인의 이익 도구로 활용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제가 이 설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구조적 부패'라는 개념이 꽤 현실적으로 그려진다는 점이었습니다. 구조적 부패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가 비리를 유지하도록 설계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한영은 해날 로펌의 지시에 따라 10년간 꼭두각시 판결을 내려왔고, 대법원장 강신진은 S그룹 비리 수습을 위해 그를 재판 집도인으로 지목합니다. 개인이 나쁜 게 아니라, 나쁜 개인이 살아남기 좋은 구조가 먼저 만들어져 있었던 겁니다.
실제로 사법부 신뢰도와 관련한 수치를 보면 이런 드라마 설정이 단순한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국민의 사법기관 신뢰도는 꾸준히 낮은 편에 머물러 있으며, 특히 재판 공정성에 대한 불신이 반복적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한영이 고진화학 산업재해 재판에서 피고 측에 매수된 판결을 내리고 원고를 기각하는 장면은, 그 불신이 어디서 비롯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이 판결로 인해 백혈병을 앓던 젊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합니다. 법이 피해자를 지키지 못한 게 아니라, 법이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들어버린 순간입니다. 저는 그 장면이 꽤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양형기준과 재판의 반전, 그 의미
드라마의 핵심 전환점은 이한영이 정해진 시나리오를 깨고 처음으로 독립적인 판결을 내리는 장면입니다. S건설 대표 장태식에게 검사의 구형보다 훨씬 높은 징역 10년과 벌금 240억을 선고하며 법정 구속을 결정합니다.
여기서 양형기준이라는 개념이 중요해집니다. 양형기준이란 법관이 형량을 결정할 때 참고하는 가이드라인으로, 같은 유형의 범죄에 대해 일관성 있는 처벌이 이뤄지도록 설계된 제도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드라마 밖에서도 자주 느끼는 감정입니다. 뉴스에서 심각한 범죄 판결이 나올 때마다 "겨우 이게 끝이야?"라는 반응이 댓글창을 가득 채우는 장면이요. 저도 그 감정에 공감합니다. 범죄자들이 판결을 보고 '잠깐 버티면 되겠네'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판결은, 결국 범죄 억지력을 잃어버린 판결입니다. 억지력이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범죄를 사전에 막는 효과를 뜻하는데, 이것이 작동하려면 처벌이 실질적으로 무겁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한영이 각성 이후 내린 판결이 의미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나쁜 사람을 응징한 게 아니라, 법이 가진 억지력을 다시 살려낸 순간이었습니다.
이 장면에서 드라마가 보여주는 핵심 메시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법관의 독립성(사법부가 외부 압력 없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무너지면 판결은 권력의 도구가 된다
- 피고인 중심의 판결이 아닌 피해자 중심의 법 집행이 사법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다
- 구형보다 높은 선고라는 파격은 판사가 살아있는 법 감각을 가질 때만 가능하다
회귀 이후의 선택, 우리 현실에 남기는 질문
10년 전으로 돌아간 이한영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연쇄 살인마 김상진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었습니다. 절도 미수로 가볍게 풀어주는 대신, 살인범이라는 증거를 직접 확보해 제대로 된 처벌을 받게 하려 한 것입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한영이 단순히 과거를 되돌리는 게 아니라 절차를 지키려 했다는 점입니다. 결과만 바꾸는 게 아니라, 과정의 정당성을 회복하려는 시도. 이게 진짜 사법 정의의 핵심 아닐까 생각합니다. 적법절차(due process)란 결과가 옳더라도 그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법이 정한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이한영이 회귀 이후 처음으로 이걸 지키려 한다는 사실이, 그의 진짜 각성을 증명합니다.
저는 가끔 지금 저라는 사람에서 완전히 새 삶을 시작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솔직히 해봤습니다. 근데 결국 드라마가 내리는 결론과 같더라고요. 환경이 아니라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 이한영도 10년 전으로 돌아갔지만, 변한 건 시간이 아니라 그가 법을 바라보는 태도였습니다.정리하면, 이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지금 이 순간 법은 누구의 편인가. 저는 그 답이 드라마 안에만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