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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에나 총평, 나쁜 방법으로 만든 옳은 결과도 정의일까
정금자라는 사람, 처음엔 불편했고 나중엔 이해가 됐다
'하이에나'는 사회 상위 1%를 변호하는 로펌 이야기라고 소개되지만, 다 보고 나면 결국 정금자 한 사람의 드라마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처음 몇 회는 솔직히 보기 편하지 않았어요. 의뢰인의 외도를 짚으며 친권에서 불리하다고 겁을 주고, 상대방 남편의 정신과 약물 복용 이력을 파고들어 소송을 이기는 식이었으니까요. 이기기 위해서라면 사람의 약한 부분을 아무렇지 않게 건드리는 인물이라, 이런 사람을 주인공으로 응원해도 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됐는지가 조금씩 보입니다. 어린 시절 가정 폭력을 겪었고, 양어머니 사건으로 복역까지 했고, 출소한 뒤에는 스스로 법을 배워 친부를 감옥에 보낸 사람입니다. 누구도 자기를 지켜주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상대보다 한 수 앞서 생각해야 했을 테고, 그 습관이 변호사가 된 지금까지 이어진 거겠죠. 그렇게 생각하니 영악하다고만 보였던 모습이 생존 방식으로 읽히기 시작했습니다.
가석방된 친부가 사무실로 찾아오는 장면은 이 드라마에서 가장 마음이 불편했던 순간 중 하나입니다. 법정에서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던 사람이 극심한 불안에 휩싸이는데, 대사로 설명하지 않고 표정과 분위기만으로 보여줍니다. 그 장면 덕분에 정금자가 그냥 강한 인물이 아니라 오래 버텨온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목사가 되어 나타난 친부가 용서를 빌라고 요구하는 대목은 보면서 화가 날 정도였습니다.
백운미 사건도 오래 남았습니다. 정금자는 교단 돈을 빼앗기 위해 백운미를 돕는 거라고 숨기지 않고 말합니다. 위로하는 척하며 접근하는 게 아니라 이용하겠다고 먼저 밝히는 셈이죠. 그런데 같은 장면에서 백운미가 겪어온 학대의 결을 정확히 알아보는 건 정금자뿐이었습니다. 둘이 서로를 하이에나에 빗대며 손을 잡는 순간, 제목이 왜 하이에나인지 비로소 와닿았습니다. 포식자처럼 보이지만 썩은 것을 치우며 살아가는 존재, 그 이미지가 정금자와 꽤 잘 맞았습니다. 백운미가 어머니의 학대를 폭로하며 복수에 성공하는 장면은 통쾌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쓰렸습니다.
송필중의 몰락, 통쾌했지만 너무 빨랐다
악역인 송필중은 존재감이 확실했습니다. 법조계의 대통령이라 불릴 만큼의 권력을 쥐고, 재벌을 위한 상속세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걸림돌이 되는 윤 대법관은 판을 짜서 무너뜨립니다. 서민에게 불리한 악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추진하는 모습이 현실의 어떤 장면들을 떠올리게 해서 더 얄미웠어요. 이런 악역이 있으니 정금자의 반격에도 힘이 실렸습니다.
하찬호와 서정화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은 꽤 촘촘했습니다. 서정화가 화이트 호텔에 들어간 시간, 아트 스카이 법인카드 결제 내역, 호텔 러그에 술 자국이 없다는 사소한 단서까지, 하나씩 퍼즐이 맞춰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로펌 충 사람들이 진상 고객 흉내를 내며 호텔 직원에게서 정보를 빼내는 장면도 가볍게 웃으면서 볼 수 있었고요. 무겁게만 흘러가지 않도록 숨통을 틔워주는 장치가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해결이 너무 매끄럽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정금자의 계획은 거의 틀어지지 않고, 필요한 단서는 때맞춰 나타납니다. 서정화가 수면제를 소량씩 가져다 달라고 했다는 증언, 사라진 CCTV, 이태우 형사의 뇌물 수수까지 한꺼번에 드러나는 속도가 현실이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이에요. 법정에서 송필중의 정산 계좌에 수억 원이 들어간 사실이 폭로되는 장면도 극적이긴 한데, 그런 자료가 그렇게 딱 맞는 순간에 나오는 일이 실제로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
중반 이후 긴장감이 떨어진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정금자가 어떻게든 이기리라는 걸 알게 되니 위기가 와도 크게 조마조마하지 않았어요. 윤희재가 질투 때문에 팀 분위기를 흐리는 장면이 반복되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한두 번은 인간적이지만 여러 번 나오면 이야기의 흐름만 끊는 느낌이었습니다.
송필중이 무너지는 속도도 마음에 걸렸습니다. 법조계를 쥐고 흔들던 사람이 사체 은닉과 증거 인멸, 거기에 살인죄까지 얹혀 한 번에 구속됩니다. 통쾌한 건 분명한데, 그를 떠받치던 조직과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하는 궁금증이 끝내 풀리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을 잡는다고 해서 그가 만든 구조까지 사라지는 건 아닐 텐데, 드라마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말이 없습니다.
결말 이후에 남은 질문
윤희재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버지인 윤 대법관이 송필중의 판에 휘말려 무너지는 걸 지켜보며 복수를 다짐하는 과정은 이 드라마의 또 다른 축이었어요. 아버지에게 희생양이 되었음을 인정하고 죗값을 치르라고 설득하는 장면은 꽤 묵직했습니다. 처음엔 정금자를 이기고 싶어 안달 난 철부지 같았던 사람이 점점 같은 편에 서는 변화도 자연스러웠어요. 징계위원회에서 둘이 서로 사랑했다고 털어놓는 장면은 오히려 가장 통쾌한 반전이었습니다. 숨기면 약점이 되는 것을 먼저 드러내 판을 뒤집는 방식이 정금자답기도 했고요.
제명 통지를 받고도 좌절하지 않고 로펌 충을 시작하는 대목에서는 이 드라마가 어떤 이야기인지 다시 느꼈습니다. 큰 조직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모여 직접 판을 짜는 이야기, 그 통쾌함이 하이에나의 가장 큰 매력이었어요. 쿠키 영상에서 정금자가 자신이 버려졌던 건물을 사들이겠다고 선언하는 마지막은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만 징계가 취소되고 모든 게 깔끔하게 정리되는 방식은 솔직히 너무 매끈해서 아쉬웠어요. 현실의 복수는 이렇게 말끔히 끝나지 않으니까요. 조금 거칠고 덜 해결된 채로 끝났다면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았을 것 같습니다.
가장 마음에 걸린 건 정의를 실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권력형 비리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결국 해결하는 건 제도가 아니라 정금자라는 뛰어난 개인입니다. 그가 없었다면 하찬호는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징역을 살았을 테고, 송필중은 여전히 법조계의 정상에 있었겠죠. 통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능력자가 없는 현실에서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씁쓸함이 남았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정금자는 자신이 착한 사람이라고 포장하지 않아요. 돈을 좇는다고 당당히 말하고, 필요하면 사람도 이용합니다. 그런데도 끝내 지키는 선이 있고, 그 최소한의 양심이 이 인물을 끝까지 응원하게 만들었습니다. 보고 나서 한참 동안 나쁜 방법으로 옳은 결과를 만들었을 때 그걸 정의라고 불러도 되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아직 확실한 답은 못 내렸어요. 그래도 이런 질문을 남기는 드라마라면 충분히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법정 드라마를 좋아하거나, 영웅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싶다면 한 번쯤 볼 만합니다. 완벽하게 현실적이진 않지만, 보는 동안 지루할 틈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