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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의기술 (부채 비율, 숨어 있던 사람의 이야기, 반복되는 해결 방식)

leedm00 2026. 10. 20. 20:27

목차


    협상의기술

    부채 비율 428%, 냉정한 숫자 속에서 시작된 이야기

    처음 이 드라마를 볼 때는 솔직히 좀 망설였다. 기업 인수합병을 다룬다고 하니 딱딱한 경제 용어가 끝도 없이 나올 것 같았고, 실제로 첫 회부터 부채 비율, 만기 연장, 자금 조달 같은 말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그런데 몇 장면 지나지 않아 그런 걱정은 금방 사라졌다. 숫자가 아무리 많이 나와도 결국 그 숫자 때문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산인그룹의 부채 비율이 428%에 달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자기 돈 1원에 빌린 돈이 4원 넘게 쌓여 있는 셈이니, 그룹이 얼마나 벼랑 끝에 서 있는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여기에 금융당국 권고치를 맞추지 못한 한비드은행이 만기 연장을 거부하면서 11조 원이라는 엄청난 현금을 단기간에 마련해야 하는 상황까지 겹친다. 회사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다.

     

    이때 본사로 돌아오는 사람이 윤준호 팀장이다. 사원들 사이에서 냉혹한 심판으로 불린다는 소문이 먼저 돌고, 다들 그가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자기 자리를 걱정한다. 실제로 윤준호가 꺼낸 첫 번째 계획도 계열사 재무제표를 하나하나 따져서 매출 꼴찌부터 정리하겠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나도 사원들과 똑같은 눈으로 그를 봤다. 숫자만 보고 사람을 잘라내는 차가운 인물이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첫 번째 매각 대상이 의외였다. 그룹에서 유일하게 흑자를 내던 산인건설을 팔겠다는 거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해가 안 됐다. 돈을 버는 회사를 왜 내놓나 싶었는데, 따져보면 11조 원을 한 번에 마련할 수 있을 만큼 덩치가 큰 곳이 거기밖에 없었다. 이 대목을 보면서 구조조정이라는 게 나쁜 걸 잘라내는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남기 위해 가장 아끼던 것까지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게 꽤 씁쓸하게 다가왔다.

    거래마다 숨어 있던 사람의 이야기

    산인건설을 팔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충렬아파트 재건축 사업이었다. 주민 동의를 75% 이상 받아야 매각이 성사되는데, 끝까지 반대하는 할머니 한 분이 있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밀어붙이거나 보상금을 올려서 해결할 수도 있었을 텐데, 윤준호 팀은 그 할머니가 왜 반대하는지부터 들여다본다. 그 사연이 풀리는 장면이 이 드라마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수조 원이 오가는 거래도 결국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야 끝난다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후에도 거래는 계속된다. 차차게임즈를 인수하는 이야기에서는 실패한 게임 '택배왕'을 만든 회사가 가진 블록체인 기술이 핵심으로 등장한다. 오프라인 매장 중심이던 산인그룹이 온라인 유통으로 넘어가려면 재고와 유통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할 시스템이 필요했고, 그게 망한 게임 회사 안에 숨어 있었다는 설정이 재미있었다. 남들이 실패작으로 본 곳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시선이 윤준호라는 인물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경쟁 펀드의 방해로 인수가 흔들릴 때 상대 대표의 숨겨진 소송 문제를 파고드는 장면도 꽤 긴장감이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일본 시미즈사와의 계약이다. 자회사 윈드의 상장을 위해 고급 자전거용 기어 물량을 확보해야 하는데, 상대 회사는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보통이라면 가격이나 조건을 두고 줄다리기를 했을 텐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과거 다이치를 인수할 때 한 장인이 남긴 설계도와 편지였다. 그 편지 하나로 상대의 마음이 열리고, 결국 절반 가격에 대규모 계약까지 따낸다. 이 장면을 보면서 거래라는 게 꼭 계산만으로 이뤄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오래 했다. 오래된 신뢰와 진심이 숫자보다 힘이 셀 때가 있다는 걸 보여준 것 같았다.

     

    제주도 다도리조트 매각 이야기도 마음이 쓰였다. 회장이 딸 송지호에게 넘겨준 리조트를 팔아야 하는데 회장은 끝까지 반대한다. 알고 보니 송지호 대표가 말기 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윤준호 팀은 리조트를 팔면서도 그녀가 계속 머물 수 있도록 무상 임대 조건을 계약서에 넣는다. 회사도 살리고 사람도 지키는 방법을 찾아낸 셈이다. 처음에 매출 꼴찌부터 정리하겠다던 그 냉정한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윤준호는 거래마다 사람을 먼저 들여다봤다. 이게 이 드라마의 진짜 반전이 아니었나 싶다.

    반복되는 해결 방식과 끝내 남은 아쉬움

    좋았던 점이 많았던 만큼 아쉬운 부분도 분명했다. 가장 크게 느낀 건 해결 방식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위기가 닥치면 누군가의 숨은 사연을 찾아내고, 그 사연으로 마음을 움직여 거래를 성사시키는 흐름이 몇 번이나 이어진다. 처음 충렬아파트 이야기 때는 정말 뭉클했는데, 시미즈사와 리조트 이야기를 지나면서부터는 이번에도 결국 감동적인 사연이 나오겠구나 하는 예상이 먼저 들었다. 각각의 이야기는 좋았지만 한데 모아 놓고 보니 조금 비슷하게 느껴졌다.

     

    팀원들의 활약이 생각보다 적었던 것도 아쉬웠다. 재무를 맡은 광민정 과장, 법무를 맡은 오순영 변호사, 그리고 인턴 최진수까지 처음 팀을 꾸릴 때만 해도 각자 큰 역할을 할 것처럼 소개됐다. 그런데 막상 중요한 순간마다 해답을 찾아내는 건 대부분 윤준호였다. 팀원 한 명 한 명이 자기 분야에서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리는 장면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팀으로서의 재미가 훨씬 컸을 것 같다.

     

    마음 한쪽이 불편했던 부분도 있다. 회장의 주식 담보 대출과 비자금 문제, 아파트를 짓기 위해 골프장을 우회해서 사들이려던 정황까지 회장 본인의 잘못이 꽤 여러 번 드러난다. 그런데 윤준호는 그 문제를 해결해주면서 오히려 회장의 신임을 얻고 이사 자리에까지 오른다. 골프장 대표와 재무팀장의 횡령을 잡아낼 때는 그렇게 단호하면서, 정작 맨 위에 있는 사람의 잘못에는 너그러운 것 같아 조금 씁쓸했다. 회사를 살리는 게 목표였다고는 해도, 이 부분은 한 번쯤 짚고 넘어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끝까지 궁금했던 것도 있다. 처음에 회장과 약속했던 부채 비율 200%를 결국 달성했는지가 또렷하게 정리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11조 원이라는 커다란 숫자로 시작한 이야기인 만큼, 마지막에 그 숫자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확실하게 보여줬다면 더 시원했을 것 같다. 대신 마지막 하정무 전무와의 대결은 꽤 통쾌했다. 윤준호를 주가 조작 혐의로 몰아 쫓아내려던 하정무가 사실은 과거 전보제약 주가 조작에 직접 손을 댄 사람이었다는 게 밝혀지는 순간, 그동안 쌓였던 답답함이 한 번에 풀렸다.

     

    다 보고 나니 처음에 느꼈던 거리감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인수합병이나 기업 재무 같은 이야기는 나와는 상관없는 세계라고 생각했는데, 이 드라마를 보고 나서는 결국 그 안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협상이 있을 뿐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해결 방식이 반복되고 회장에게 관대한 흐름은 분명 아쉽다. 그래도 충렬아파트 할머니의 사연이나 시미즈사의 편지 장면처럼 오래 마음에 남는 순간이 있었다면, 나한테는 충분히 시간을 들인 보람이 있는 드라마였다. 경제 이야기가 어렵게만 느껴졌던 사람이라면 오히려 이 드라마로 가볍게 시작해봐도 좋을 것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A3XOYsJ08F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