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툰 작가가 그린 세계가 현실이 된다면, 그 창조주는 신일까요 아니면 괴물일까요. 드라마 W는 바로 이 질문 하나로 16부작을 끌고 갔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웹툰 작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설정 자체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웹툰 작가들이 고정 패널로 나오는 걸 워낙 많이 봐왔기 때문입니다.
웹툰작가, 예능 고정석까지 꿰찬 이유
저는 TV를 꽤 많이 보는 편인데,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 웹툰 작가들이 고정 멤버로 등장하는 장면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웹툰 작가라고 하면 컴퓨터 앞에 앉아 그림만 그리는 조용한 직업 이미지였는데, 지금은 방송에도 나오고 강연도 하고 심지어 브랜드 협업까지 하는 크리에이터 개념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런 변화의 배경을 살펴보면, 국내 웹툰 산업의 규모 자체가 크게 성장한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드라마 W에서 등장하는 웹툰 작가 오성무 역시 이런 흐름 위에 놓인 캐릭터입니다. 그가 연재하는 웹툰 'W'는 단순한 만화를 넘어 IP(Intellectual Property), 즉 지식재산권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콘텐츠입니다. IP란 원작 스토리나 캐릭터를 기반으로 드라마, 영화, 게임, 굿즈 등으로 확장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실제로 현실에서도 웹툰 원작 드라마나 영화가 꾸준히 제작되고 있고, 저도 그렇게 파생된 작품들을 여럿 챙겨본 경험이 있습니다.
웹툰이 대중적 영향력을 갖게 된 핵심 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스마트폰 보급으로 접근성이 폭발적으로 높아진 것
- 플랫폼 알고리즘이 개인 취향에 맞는 작품을 추천해 충성 독자층을 형성한 것
- 성공한 작품이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면서 작가 인지도가 연쇄적으로 상승한 것
세계관 설계, W 드라마가 건드린 진짜 질문
드라마 W의 구조를 뜯어보면,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라 세계관(World-building) 설계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세계관이란 작품 내에서 인물, 사건, 규칙이 작동하는 내적 논리 체계를 말합니다. W는 이 세계관이 현실과 충돌할 때 어떤 균열이 생기는지를 이야기의 핵심 동력으로 삼습니다.
흉부외과 레지던트 오연주가 웹툰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주인공 강철이 자신이 허구의 존재임을 깨닫는 설정은 메타픽션(Meta-fiction)의 전형적인 구조입니다. 메타픽션이란 작품 안의 인물이 자신이 이야기 속 존재임을 인식하거나, 창작 행위 자체를 소재로 삼는 서사 기법을 말합니다. 이 기법이 낯선 분들에게는 꽤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실제로 보면 몰입도가 상당합니다.
제가 이 드라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다루는 방식이었습니다. 오성무는 강철을 그린 작가이자 그의 존재를 좌우하는 신적 존재인데, 강철이 자아를 갖고 그에게 저항하면서 이야기가 완전히 뒤집힙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단순히 웹툰 속 잘생긴 남자 주인공과 현실 여성의 로맨스겠거니 했는데, 존재론적인 질문을 꽤 진지하게 다루더라고요.
진범 캐릭터가 자아를 얻어 살인을 저지르는 설정 역시 이 세계관의 논리를 따른 결과입니다. 설정값(Setting Value), 즉 작품 내 규칙이 바뀌면 인물의 행동 자체가 달라진다는 전제 위에서 이야기가 굴러갑니다. 설정값이란 웹툰 속 인물의 성격, 운명, 행동 범위를 결정짓는 작가의 창작 규칙을 말합니다. 강철이 이 설정값에서 벗어나려는 싸움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긴장감의 원천이었습니다.

해피엔딩,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쟁취한 결말
W 드라마의 결말은 강철이 1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현실로 완전히 돌아와 연주와 재회하는 해피엔딩입니다. 그런데 이 해피엔딩이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오성무의 희생과 강철 본인의 결단, 연주의 고군분투가 겹쳐야 비로소 설정값이 '해피엔딩'으로 수정됩니다. 쉽게 말해, 결말을 바꾸기 위해 인물들이 직접 서사의 구조와 싸운 겁니다.
저는 이 부분이 현실의 웹툰 산업 구조와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실제 웹툰 작가들도 독자 반응, 플랫폼 알고리즘, 수익 구조라는 설정값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향해 싸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웹툰 작가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웹툰 작가 중 안정적인 수익을 얻는 비율은 상위 10% 내외에 불과하다는 결과가 있습니다.
성공한 작가들의 화려한 모습 뒤에 훨씬 많은 작가들이 버티고 있다는 현실이 드라마의 고군분투 서사와 겹쳐 보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드라마처럼 웹툰 세계가 현실로 연결되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제가 그 장면들을 보면서 신기하다기보다 '이런 소재를 드라마로 엮어낸 발상이 재밌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습니다. 내러티브 트랜스미디어(Narrative Transmedia), 즉 하나의 이야기가 웹툰, 드라마, 영화 등 여러 매체를 넘나들며 확장되는 방식이 지금처럼 활발해진 시대이다 보니, W 같은 설정이 오히려 시대 감각과 맞아떨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W 드라마는 웹툰이라는 소재를 단순히 배경으로 쓴 게 아니라, 창작자와 창조물 사이의 관계, 이야기의 주도권, 그리고 결말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저는 예능에서 웹툰 작가들을 자주 보면서도 그들의 작업이 얼마나 복잡한 세계관 설계를 전제로 하는지 크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 드라마를 계기로 한번 더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웹툰 원작 드라마를 찾아보실 계획이라면, W처럼 원작의 구조 자체를 소재로 삼은 작품부터 시작해보시는 것도 꽤 색다른 경험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