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파탄드라마에서 오해영은 결혼 준비 과정의 갈등으로 파혼을 선언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결혼 준비 때 싸우는 건 흔한 일"이라며 다시 생각해보라고 종용하죠. 그런데 오해영의 입장은 단호합니다. "남들 다 하는 결혼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이 감각이 이해가 됐습니다.결혼 준비 갈등(wedding planning conflict)은 심리학적으로도 꽤 연구된 주제입니다. 여기서 결혼 준비 갈등이란 예식 준비 과정에서 발생하는 가치관, 재정, 가족 관계 등 복합적 마찰을 뜻하는데, 이 시기에 관계의 진짜 민낯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오해영의 파혼에는 또 다른 층위가 있습니다. 상대방 태진이 "밥 먹는 게 꼴보기 싫어졌다"며 파혼을 통보한 것입..
교모세포종 진단, 그리고 절망이 부른 이름드라마는 탁동경이 병원에서 교모세포종(Glioblastoma Multiforme, GBM) 진단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저는 이 장면에서 멈칫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봤는데, 삶이 너무 힘들 때 의사한테 "앞으로 이렇게 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그게 어떤 내용이든 귀에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탁동경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그냥 멍하니 앉아있다가, 집에 돌아와 혼자 내뱉습니다. "세상 다 망해라." 이 말이 그냥 화풀이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아프기 싫은데 아프고, 살고 싶은데 살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건 자기 자신보다 세상을 탓하는 겁니다. 그 감정이 쌓이면 '멸망'이라는 단어가 입에서 자..
미제사건을 풀어가는 방식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드라마에서 프로파일러 박해영은 폐기된 무전기를 통해 15년 전 과거의 형사 이재한과 교신을 시작합니다. 첫 번째 단서는 단순했습니다. "정동선1 정신병원 맨홀 뒤편에 목을 맨 시신이 있다"는 무전 내용 하나로 15년간 미제(未濟)로 남아있던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여기서 미제사건이란, 범인을 특정하지 못하거나 기소에 이르지 못한 채 수사가 종결된 사건을 뜻합니다. 저는 현재와 과거가 서로 연락이 닿는다면 가장 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분야가 바로 이 미제사건 수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과거에서 행적을 실시간으로 공유해준다면 현재에서 범인의 동선을 미리 추측해볼 수 있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드라마가 이 논리를 그대로 구현했다는 점이 신선했습니다.박해..
동물도 감정이 있다는 걸, 드라마가 제일 잘 말해줬습니다일반적으로 동물은 훈련을 시키면 어느 정도 말을 듣는다고들 알고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믿었습니다. 예전에 집에서 강아지를 키울 때 유튜브로 훈련 영상을 찾아보고 직접 따라 해봤는데, 결국 훈련보다 중요한 건 그 강아지가 지금 무슨 감정 상태인지를 먼저 파악하는 거였습니다. 그게 안 되면 교육 자체가 성립을 하지 않는다는 생각입니다.힙하게에서 주인공 봉예분이 가진 능력이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립니다. 그녀는 유성 낙하 사고 이후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 능력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 사이코메트리란 특정 물체나 생명체에 직접 접촉함으로써 그 대상이 경험한 과거의 기억이나 감정을 감각적으로 읽어내는 초능력을 의미합니다. 드라마에서는 구체적으로 엉..
종말 이후의 세계관,택배기사의 의미드라마 속 세계는 새로운 자원인 '옥시늄(Oxynium)'으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옥시늄이란 혜성 충돌 이후 희귀하게 생성된 광물로, 이것을 가공해야만 인공 산소를 만들 수 있는 물질입니다. 쉽게 말해 이 세계에서 옥시늄은 곧 생명줄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일반·특별·코어, 세 등급으로 철저하게 분류됩니다.등급 밖으로 밀려난 난민들에게는 QR코드조차 없습니다. QR코드란 이 세계에서 신분과 배급 자격을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으로, 이게 없으면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그 난민들에게 유일하게 닿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택배기사입니다. 개인 이름 대신 5-8, 5-7 같은 일련번호로 불리는 이 사람들이, 모래폭풍을 뚫고 헌터들과 맞서 싸우며 산소와 생..
영혼이전 설정이 드라마를 살린 이유제가 직접 시청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설정 자칫하면 너무 편하겠다"였습니다. 영혼이전(靈魂移轉), 즉 술사가 자신의 영혼을 다른 사람의 신체로 옮겨 생명을 이어가는 술법인데, 이게 제약 없이 남용되면 사실상 불사신이나 다름없잖아요. 드라마가 얼마나 이 허점을 인식하고 있는지가 관건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환혼은 이 부분을 꽤 영리하게 처리했습니다. 낙수가 옮겨간 몸이 하필 기력이 쇠한 시종 무덕이입니다. 여기서 기력(氣力)이란 단순히 체력을 뜻하는 게 아니라, 술사가 술법을 운용하는 근본 에너지 총량을 의미합니다. 무덕이는 원래부터 신체가 허약해 기력 자체가 바닥에 가까운 상태였기 때문에, 낙수가 아무리 뛰어난 술사였어도 그 몸 안에서 술법을 자유롭게 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