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이 아니라 단서로 쌓아 올린 추리첫 사건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냉동된 채 깔끔하게 절단된 시신이 발견되는 장면에서는 화면을 똑바로 보기가 어려웠어요. 그런데 송하영은 그 끔찍한 현장에서 고개를 돌리지 않습니다. 눈과 혀까지 훼손된 모습을 보고, 이건 시신을 옮기려고 한 일이 아니라 다른 의도가 있다고 짚어냅니다. 절단이 지나치게 능숙하다는 점에서 정육점이나 도축 일을 해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꺼내고요. 처음엔 저도 너무 앞서가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그 추론들이 하나씩 맞아떨어지는 걸 보며 소름이 돋았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냉장고 선반에 눌린 자국이었습니다. 다들 그냥 지나칠 법한 흔적인데, 분석팀은 그걸 붙잡고 고물상과 전파상을 하나하나 돌아다닙니다. 그러다 19..
수능 날 아침, 도망치고 싶던 아이가 조선에 떨어졌다국지성 호우가 예보된 수능 당일 아침이었습니다. 가족들의 응원을 받으며 집을 나선 단비는 시험장으로 향하던 길에 쏟아지는 비와 함께 알 수 없는 공간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그리고 눈을 떠 보니 3년째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조선이었죠. 비 한 방울이 귀한 마을에 비와 함께 나타났으니, 사람들은 단비를 하늘에서 내려온 아이라며 반깁니다. 현재에서 단비를 끌어당긴 비가 조선에서는 간절히 기다리던 비였다는 설정이 처음부터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른 시대로 넘어가는 이야기야 그동안 수많은 드라마에서 봐왔던 설정이라 처음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작품은 출발점이 조금 달랐습니다. 수능을 코앞에 두고 수학이라면 고개부터 젓는 고3, 하루 시험으로 ..
뻔할 줄 알았던 계약 결혼, 첫 만남부터 달랐다처음 이 드라마를 틀었을 때만 해도 큰 기대는 없었습니다. 재벌가 후계 다툼에 계약 결혼, 거기에 악마까지 나온다고 하니 어디선가 이미 본 듯한 조합이었거든요. 그런데 몇 장면 지나지 않아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미래 F&B 대표 도도희는 주회장의 수양딸로, 그룹 후계 구도 한가운데 서 있는 인물입니다. 시상식의 주인공이 될 만큼 능력도 있고 당당한데, 정작 주회장의 성화에 못 이겨 맞선 자리에 끌려 나갑니다.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려놓은 그 자리에서 마주한 상대가 바로 정구원이었죠. 200년 동안 사람들의 욕망을 붙잡고 계약을 맺어온 악마요. 둘은 만나자마자 말끝마다 부딪히는데, 저는 오히려 그 티격태격하는 모습 덕분에 관계의 시작이 억지스럽지 않게 느..
처음부터 선을 넘던 검사, 진정이라는 사람드라마는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았습니다. 중앙지검 형사부 검사 진정이 리치펀드 대표 김영균의 뒤를 봐주는 척 슬쩍 접근하더니, 결국 비밀 장부가 어디 있는지까지 알아냅니다. 처음엔 이 사람이 진짜 검사가 맞나 싶었어요. 말투나 행동이 워낙 능청스러워서 오히려 비리 검사처럼 보였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처음부터 김영균을 잡으려고 판을 짜 놓은 거였고, 연극 한 편을 제대로 꾸며서 일당을 한 번에 쓸어 담습니다. 이 오프닝에서 이미 이 드라마가 어떤 분위기로 갈지 감이 왔습니다. 재미있는 건 그다음 장면이었습니다. 보통 이런 장면이면 주인공이 박수받고 끝나기 마련인데, 진정은 선배 검사 아라에게 혼자 멋대로 움직였다고 한 소리를 듣습니다. 성과는 냈는데 칭찬 대신 ..
500년 계약과 그승, 처음엔 설정이 과하다 싶었다판타지 드라마는 세계관이 복잡해질수록 따라가기 힘들어진다는 게 평소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쌍갑포차를 처음 틀었을 때도 반쯤은 의심하면서 봤어요. 이승과 저승 사이 어딘가에 포장마차가 있고, 그 포차 사장이 조선 시대 무당이라니. 듣기만 해도 설정이 과하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몇 화 지나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승이라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한자리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그 덕분에 이 드라마만의 정서가 만들어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 월주의 사연은 시작부터 무겁습니다. 조선에서 용하다고 소문난 무당이었던 월주는 중전의 부름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 꿈속에 갇힌 세자를 깨워냅니다. 억울하게 죽은 원귀들을 달래서 겨우 살려냈는..
부채 비율 428%, 냉정한 숫자 속에서 시작된 이야기처음 이 드라마를 볼 때는 솔직히 좀 망설였다. 기업 인수합병을 다룬다고 하니 딱딱한 경제 용어가 끝도 없이 나올 것 같았고, 실제로 첫 회부터 부채 비율, 만기 연장, 자금 조달 같은 말들이 쉴 새 없이 쏟아졌다. 그런데 몇 장면 지나지 않아 그런 걱정은 금방 사라졌다. 숫자가 아무리 많이 나와도 결국 그 숫자 때문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산인그룹의 부채 비율이 428%에 달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자기 돈 1원에 빌린 돈이 4원 넘게 쌓여 있는 셈이니, 그룹이 얼마나 벼랑 끝에 서 있는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진다. 여기에 금융당국 권고치를 맞추지 못한 한비드은행이 만기 연장을 거부하면서 11조 원이라는 엄청난 현..